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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둘. 여주 人

    자연에 안겨
    자연을 담다

    도예가 이양재

    이양재 도예가를 찾아간 날엔 늦깎이 장마의 기세가 대단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커피나 한잔하자며
    그는 손수 커피를 만들었다. 도예가의 커피는 예사롭지 않았다. 여러 원두를 섞어 직접 볶고, 갈고,
    핸드드립으로 정성껏 내렸다. 그렇게 완성된 커피가 그가 만든 커피 잔에 담겼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커피 향은 그윽했다. 여주시 강천면 자연 품에 안긴 한적한 도예 공방에서 이야기는 시작됐다.

    글 이현주(편집실)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 오랫동안 물레를 차온 이양재의 손끝에서 금세 흙덩이가 생명을 얻는다.
  • 여주가 좋아 강천면에 정착해
    공방은 직접 지었죠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여주 하면 누구나 바로 도자기를 떠올리지 않나. 여주는 양질의 고령토와 가마 불을 때는 소나무, 깨끗한 물 등 좋은 도자기가 나올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명성은 기원이 오래돼 고려시대 가마터가 25개나 남아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백자가 처음 시작된 곳도 바로 이곳, 여주다. 그렇다고 모든 도예가가 여주에 터를 잡는 것은 아닐 터. 이양재 도예가는 왜 이곳 여주를 선택했을까?

    “처음 홍대 앞 5층 건물 지하에서 개인 작업장을 시작했다가 후에 양평에 있는 방앗간 터를 얻어 조금 큰 가마를 만들었죠. 양평에서는 여주가 가까워 여주에 있는 재료상을 이용했는데, 어느 날 여주에 왔다가 월세도 싼 데다 큰 가마도 제공해준다는 광고를 봤어요. 가보니 대형 작업도 가능한 큰 가마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곳에 정착하게 됐어요. 여주에서는 도예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바로바로 구할 수 있어 너무 편해요.”

    여주에 둥지를 틀기로 했지만, 공방 지을 곳을 찾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오래 공을 들여 찾은 만큼 ‘이양재 공방’이라는 작은 간판이 내걸린 곳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잔디밭 뒤로 앉은 하얀 세모 지붕 집은 살림집이자 전시관이고, 그 옆에 돌과 나무로 지은 운치 있는 건물은 공방이다.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는 커다란 통유리창과 차곡차곡 쌓아 올린 돌의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공방. 어딘지 모르게 투박하지만 마음을 푸근하게 만드는 이곳은 그가 지인과 함께 직접 지었단다. 공방은 실제 도자기 작업을 하는 작업실과 연결돼 있다. 가마와 물레, 초벌·재벌한 도자기들이 자리 잡은 작업실을 구경시켜주다 “비 오는 날엔 원래 물레를 차지 않는데…”라며 그가 잠시 물레 앞에 앉는다. 그러더니 금세 그의 손에서 찻잔 하나가 생겨난다. 도자기 만드는 체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흙덩이가 온전한 그릇의 형태를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힘과 노력, 공을 들여야 하는지. 이양재의 마법 같은 손길은 그가 얼마나 도를 닦듯 오랫동안 물레를 찼을지 짐작케 한다.

    그는 주로 청화백자를 빚는다.
    현대에 어울리는 그릇을 만들고 싶었어요

    도예가 이양재는 백자를 만든다. 백자 중에서도 청색 문양이 도드라지는 청화백자가 대부분이다. 눈처럼 흰 백자에 동해 바닷물처럼 짙푸른 선이 유연하게 춤을 춘다. 선들은 산과 강, 꽃이 되고 새가 되고 물고기도 된다. 그의 손끝에서 생명을 얻은 무늬들은 밥그릇과 국그릇, 술병과 술잔, 접시, 찻잔, 꽃병 속에 자리해 사람들의 식탁과 일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백자는 오래된 유산인데, 그렇게 그가 무늬를 그려 넣은 청화백자는 유난히 현대적이고 세련돼 보인다. 아마도 그가 걸어온 길 덕분이라고 지레짐작해본다.

    그는 홍익대학교 디자인과를 4학년까지 다니다 도자기와 흙에 매료돼 도예과에 입학해 1학년부터 도예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영국에 유학했고, 유럽을 돌며 각 나라의 도자기를 참 많이도 찾아다녔다.

    “단순한 내 드로잉 스타일이 청색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때 실습 삼아 청화, 철화, 상감 등 모든 기법을 해봤지만 그때는 좀 막연했어요. 그런데 유럽에서 만난 도자기 중에 특히 로열코펜하겐이나 중국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청화백자의 자유스러운 기법이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청화 작업에 물두했죠.”

    그렇게 ‘청화백자와 선 드로잉’이라는 이양재 스타일의 도자기가 탄생한 지 20여 년. 요즘 그의 작품에는 유독 닭이 많이 눈에 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닭처럼 조형성이 뛰어난 소재도 없다고. 한때 닭을 10마리나 키웠지만, 족제비가 모두 잡아먹어 버렸다고 안타까워하는 그는 공방 문을 열고 나가면 마주치는 주변의 모든 것이 작품의 소재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공방 옆 전시장에선 그가 그렇게 일상에서 혜안으로 포착한 다양한 소재로 탄생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청화백자에 몰두하기 전 작업했던 달항아리, 철화백자 등도 자리해 그동안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엿볼 수 있다.

    도자기는 다른 예술 작품과 달리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양재는 감상하는 작품보다 실생활과 어우러지는 그릇에 더 가치를 둔다. 11회의 개인전과 100여 회의 그룹전, 뉴욕과 파리 등지에서 전시를 여는 동안 그는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릇 제작에 몰두하는 건 도자기의 본질은 그릇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쓰는 그릇에 미감으로 조금만 포인트를 주면 좋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처음엔 그릇을 만드는 것이 어렵더군요. 작품은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지만 그릇은 정해진 형태를 갖춰야 하니까요. 옛 도공들은 어려서부터 쭉 그릇을 만들었고, 기형을 변형시키지 않아 쉽게 만들었겠지만 저에겐 쉽지 않았죠.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사용하기 좋은 그릇, 현대에 어울리는 그릇을 만들고 싶었고, 지금껏 그렇게 작업하고 있죠.”

    주변에서 보는 모든 사물이 그의 작품 소재가 된다.

    “도자기는 스포츠와 달리 젊을 때 잠깐 승부를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긴 인생과 경험을 통해 작업이 이루어지는 세계입니다. 스피드를 강조하는 요즘, 많은 실패와 노력을 통해 완성되는 도자기는 천천히, 조용히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죠. 제 나이 예순셋이에요. 지금은 그동안의 노력으로 이룬 절정의 시간이자, 다시 시작하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이 절정의 시간이자, 다시 시작하는 나이죠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 즐거움을 주는 것처럼 도예가에게 기쁜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작품에 대한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코로나19로 전시, 축제 등이 모두 취소나 연기되다 보니 작품을 제작할 동기 자체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도예 작품은 다른 분야에 비해 비대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미술품은 온라인을 통한 거래도 많이 이루어지지만, 도자기는 직접 눈으로 봐야 그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저렴한 가격의 공장 제품은 온라인에서도 살 수 있겠지만 귀한 도예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선뜻 선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점점 후배가 없어진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대학에서 도예과는 점점 줄고 있다. 젊은이들도 경제적 보상이 약속되지 않는 힘든 일에 자청해 뛰어들기란 쉽지 않을 터. 그럼에도 작업 환경이 다른 곳보다 좋고 비교적 임대료가 저렴한 이곳 여주에 젊은 도예가가 많이 정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자기는 스포츠와 달리 젊을 때 잠깐 승부를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긴 인생과 경험을 통해 작업이 이루어지는 세계입니다. 스피드를 강조하는 요즘, 많은 실패와 노력을 통해 완성되는 도자기는 천천히, 조용히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죠. 제 나이 예순셋이에요. 지금은 그동안의 노력으로 이룬 절정의 시간이자, 다시 시작하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생각지도 않은 팬데믹까지 겹쳐 예술가는 더욱 힘든 시절이다. 그는 스스로 좀 게을러진 느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요즘도 매일 물레 앞에 앉는다. 그의 손끝에서는 오늘도 흙에서 생명을 얻은 작품이 탄생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빨리 이 긴 터널 같은 시기를 지나 그의 작품이 여주시 강천면을 벗어나 전국, 전 세계로 뻗어나가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그들의 공간과 일상을 아름답게 채우길 바라본다.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의 일상을 아름답게 채우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도예가 이양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