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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둘. 예술 교과서를 펴고

    포용의
    길을 묻다

    뮤지컬 〈세종, 1446〉

    모두가 세종을 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조각에 불과하다. 세종을 다룬 콘텐츠가 다양하게 등장하는 이유다.
    세자가 되기 전의 삶, 장영실과의 관계는 각각 영화 〈왕이로소이다〉와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 담겼다.
    KBS2 드라마 〈대왕 세종〉은 긴 호흡으로 일대기를,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는 욕하는
    세종으로 그의 인간적인 면을 비췄다. 타임 슬립이라는 설정과 로맨스도 세종을 만날 정도니,
    이쯤 되면 세종만큼 동시대를 함께 사는 왕도 드물다. 이에 더해 뮤지컬 〈세종, 1446〉은 세종의
    또 다른 면모를 담은 새로운 조각을 제시한다.

    글 장경진 사진 제공 여주세종문화재단
  • 누가 날 세자라 하는가

    〈세종, 1446〉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창작 뮤지컬로, 2017년 여주 세종국악당에서 초연됐다. 역사 속 인물을 다룰 때 다수의 콘텐츠가 연대기적 구성을 취한다. 〈세종, 1446〉 역시 세종의 40년을 충녕대군 시절, 왕권 강화기, 훈민정음 창제 3단계로 구분해 설명한다. 대신 업적보다는 과정에 집중함으로써 관객이 왕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었던 세종의 다양한 감정을 만나도록 돕는다. 그는 정답을 찾기 위해서라면 제 몸이 망가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고, 옳은 일을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인간이었다.

    특히 〈세종, 1446〉은 왕이 될 수 없었던 셋째가 왕이 되며 겪는 시행착오에 주목했다. 피로 물든 태종의 용상은 서책을 가까이한 세종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갈등은 끝이 없고, 세종을 믿지 못하는 대신들의 반대는 그를 옭아매는 사슬이었다. 역모의 누명을 쓴 장인마저 구할 수 없는, 왕이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꼭두각시의 삶이었다. 작품은 수시로 “누가 날 세자라 하는가”라며 자신의 위치를 의심하는 이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가득한 그의 노래는 역사의 무게감을 벗고 동시대 관객과 연결되는 힘이다. 이도의 정서에 공감한 관객들은 비로소 선왕을 향해 “왕명입니다”를 외치는 세종의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임금의 일은 백성의 원망 또한
    감내해야 하는 것이니

    1막은 이도가 권위를 갖기까지의 성장을 보여준다면, 2막은 일하는 왕을 통해 리더의 자질을 묻는다. 세종은 숙청을 통한 태종의 통치 방식과는 다른 자신만의 정치를 선보인다. 즉위 직후 반대에 부딪혔던 조세 개혁을 단행하고, 능력만 있다면 노비 출신이라도 등용해 함께 일했다. 법전과 농사법, 지도에 이르기까지 백성의 삶에 밀착된 각종 정책을 수립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여진족과의 전쟁에서 잘 드러난다. 전쟁 포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는 백성의 반대 의견을 듣고도 “임금의 일은 백성의 원망 또한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며 흔들리지 않는 결단력을 보여준다. 고려 재건을 꿈꾸는 가상 인물 전해운의 존재도 세종이 보여준 포용의 정치를 위한 선택인 셈이다.

    조선만의 시간과 우리만의 문자 제작은 〈세종, 1446〉의 핵심적 사건이다. 세종의 가장 큰 업적이기도 하지만, 국가를 대하는 세종의 자주성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라서다. 각본을 쓴 김선미 작가 역시 시간과 글자에서 “누구도 부술 수 없고, 망칠 수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한” 세종의 노력에 착안해 작품을 완성했다. 세종은 온갖 우려와 비난, 질병 속에서도 자주 국가를 위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작품은 훈민정음이 창제된 1443년이 아닌 반포된 1446년에 방점을 찍는다. 문자의 창조보다 우리만의 글자가 백성의 삶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기를 바라는 세종의 간절함과 집요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 엔터테인먼트 웹매거진 〈매거진t〉와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10년간 콘텐츠 프로듀서와 공연 담당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프리랜스 공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공연예술 작품 속 여성의 삶과 선택에 주목하는 무크지 〈여덟 갈피〉를 만들고 있다.

    뮤지컬 〈세종, 1446〉은 오는 10월 9일(토) 한글날 특별 공연으로 네이버TV를 통해 온라인 중계된다. 연이어 10월 16일(토) 하남문화예술회관 대극장, 11월 19일(금)~20일(토) 진주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대극장, 12월 3일(금)~4일(토)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 12월 17일(금)~18일(토) 여주 세종국악당에서 공연 예정이다.

  • 강인한 왕으로 성장하는 세종,
    사운드와 움직임도 달라지다

    뮤지컬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묘사하는 음악이다. 〈세종, 1446〉은 태종이 정몽주를 살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태의 긴박함과 태종의 잔혹함을 표현하기 위해 기타 리프와 드럼 비트가 강렬하게 등장하고, 그 위로 대금 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이러한 양악기와 국악기의 결합은 〈세종, 1446〉이 역사를 다루는 작품이기 이전에, 모두를 아우른 세종의 태도를 보여주기 위한 것에 가깝다.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은 이후로도 줄곧 이어진다. 극 초반의 넘버들에는 불협화음이 많다. 태종의 넘버들은 낮고 음습하며, 변화를 원치 않는 대신들의 노래는 반복적이다. 난해하고 복잡한 코드는 익숙하지 않지만, 그 부자연스러움이 도리어 어지러운 조선을 탁월하게 그려낸다. 이후 〈세종, 1446〉의 음악은 세종이 갈등을 딛고 강인한 왕으로 성장하며 밝고 멜로디가 강조된 방식으로 변화한다. 엄숙한 궁중음악과 흥 넘치는 민요의 모티브들은 계급사회였던 조선의 상황을 표현함과 동시에 통합을 시도한다.

    배우들의 움직임도 〈세종, 1446〉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다. 태종과 전해운의 사병들은 절도 있는 안무로 극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특히 조선의 전복을 노리는 전해운과 세종의 호위무사 운검의 대결은 〈세종, 1446〉의 백미다. 화려한 기타 연주가 더해진 3분가량의 이 장면은 안무라기보다는 실전 액션에 가깝다. 초연부터 운검 역을 맡은 배우 이지석이 태권도를 비롯해 전 세계의 전통 무술을 다수 습득한 무예인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움직임이 직선형 액션이라면, 궁녀로 대변되는 여성들의 움직임은 유려하게 표현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훈민정음 창제 과정이다. 하얀 의상을 입은 배우는 마치 세종의 붓이 된 듯 자음의 모양을 형상화하고, 백성을 향한 세종의 마음을 담아 독무를 펼친다. 무대 역시 보개천장과 용상, 계단과 기둥을 이용해 궁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8개의 장지문 패널이 무대 전환을 돕는다.

    서로 다른 환경의 이들, 한목소리를 내다

    세종의 업적은 그 범위가 상당히 넓다. 집현전 학자들로 하여금 각종 저서를 짓게 했고, 간의와 자격루를 만들어 조선의 과학적 기틀을 마련했다. 무기를 개량하고, 의료기관을 정비했으며, 관비에게도 출산휴가를 주었다. 조선만의 음악과 문자가 그에게서 완성됐다. 이 모든 것은 세종의 백성을 향한 마음에서 비롯됐는데 여러 요소가 통합된 뮤지컬은 그의 애민 정신을 보여주기 위한 적절한 방법인 셈이다. 〈세종, 1446〉에는 20명의 앙상블 배우가 출연한다. 이들은 세종을 반대하는 신하이자 저잣거리의 백성이 되어 무대 구석구석을 누빈다. 작품의 시대와 공간, 정서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앙상블 배우는 언제나 중요하다. 그러나 〈세종, 1446〉은 극의 많은 부분을 합창으로 설정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한목소리를 내게 했다. 작품의 마지막 곡인 ‘그대의 길을 따르리’는 마치 세종의 애민 정신에 대한 답가처럼도 들린다.

    〈세종, 1446〉은 본공연 전, 영국에서 소개됐다. 600년 전 조선의 이야기는 세계에서도 통한다. 분노와 증오는 어디서든 쉽게 발견된다. 혼돈의 세계 속에서도 함께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낫다면, 그것은 상생의 태도 덕이다. 〈세종, 1446〉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리더를 통해 통합의 길로 달려나가는 극이다. 어쩌면 2021년 가장 필요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세종의 이야기는 2021년 한글날 특별 공연을 시작으로 10~12월, 하남, 진주, 김해, 여주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