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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둘. 세종 이야기

    한글의 우수성과
    보편적 가치

    놀라운 발명품 한글

    얼마 전 글로벌 패스트푸드 업체 맥도날드가 그룹 방탄소년단과 협업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당시 맥도날드 매장 직원들은 특별한 티셔츠를 입었는데,
    그 티셔츠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바로 ‘ㅂㅌㅅㄴㄷ’, ‘ㅁㄷㄴㄷ’ 라는 한글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글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글이 됐다. 우리의 위대한 유산, 한글.
    익히 들었지만 정작 잘 몰랐던 한글의 우수성을 조목조목 짚어본다.

    글 김슬옹(세종국어문화원 원장)
  • 《훈민정음 해례본》 초간본 정음1ㄱ(간송미술관 복간본)
    * 후대 복원한 붓글씨체
  • 세계 어디에도 없다

    1886년 고종 임금은 근대식 학교 ‘육영공원(育英公院)’을 세우면서 미국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한테 세 명의 교사 파견을 요청한다. 이때 24살(미국 나이 23살)의 젊은이가 한국 땅을 밟는다. 위대한 한국학 학자이자, 목회자였고 한국 독립운동가였던 헐버트(Homer Hulbert)였다. 그는 3년 만에 한국어와 한글에 최고 권위자가 되어 미국 〈뉴욕트리뷴(New York Tribune)〉에 소논문을 투고했는데 거기서 이런 말을 남긴다. “The Korean alphabet has not its equal for simplicity in the construction of its letters._HULBERT(1889), The Korean Language.” 한글 짜임새의 간결함과 견줄 만한 문자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을 해외에 알린 최초의 논문이었다.

    영국의 저명한 문자학자 제프리 샘슨(Geoffrey Sampson)은 《Writing Systems(표기 체계)》(1985)라는 책에서 “한글은 의심할 여지없이 인류의 위대한 지적 업적의 하나로서 자리를 차지할 것이 틀림없다(Hangeul is ultimately the best of all conceivable scripts for Korean, Hangeul must unquestionably rank as one of the great intellectual achievement of mankind)”라고 했다.

    외국 학자들의 한글 격찬은 끝이 없지만, 영국의 역사가 존맨(John Man)의 평가가 압권이다. “한글은 모든 문자의 꿈(Here, then, is about the best alphabet any language can hope for(2001,ALPHA BETA. p.116)”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한글에 대해 이렇게 경이로운 찬사가 이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답은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문자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발명품은 무엇일까? 형광등, 비행기, 휴대전화. 모두 위대한 발명품이지만 최고는 아니다. 더 나은 발명품 또는 개량품이 1년도 안 돼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훈민정음, 한글은 더 이상 더 나은 문자가 나올 수가 없다. 세계 천재 1,000명을 모아 1,000년을 연구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문자를 세종이 발명했고 우리가 그 문자를 쓰고 있다.

    그럼 보편성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 한글(훈민정음)의 짜임새
    • 15세기 훈민정음 자음자 17자의 제자 원리
    점과 직선, 문자가 되다

    한글이 배우기 쉬운 것은 문자 짜임새가 과학적이고 간결하기 때문이고 그런 특성은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적용되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 15세기 훈민정음 28자를 기준으로 보면 1번 그림에서 보듯 점, 원과 직선만으로 구성돼 있다. 자음자와 모음자 모두 그렇다. 수직선과 수평선이 70%를 넘는다.

    점과 직선이 어떻게 문자로 확산해가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필자가 그린 것이다. 세계 그 어떤 문자도 이렇게 직선 위주로 된 문자는 없다.

    그래서 간결하고 과학적인 문자가 됐다. 자음자 상형과 확장을 보여주는 그림에서 한글(훈민정음)에 적용된 과학적·수학(기하학)적 보편성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보편성은 쉬운 문자로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나누라는 인문주의 보편성으로 이어지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물론 세종은 동양의 보편 철학인 음양오행을 적용했다. 음악도 여기에 포함됐으므로 음악적 보편성까지 적용한 것이다. 이렇게 보편성을 적용한 것은 천지자연의 이치(음양오행)를 적용한 문자를 쓰는 백성은 양민이든 천민이든 모두 하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성을 자세하게 설명해놓은 책이 오늘날 한글날의 기원이 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늘푸른자연학교 명예교장. 35년간의 한글 운동과 연구 공로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받았고, EBS 한글 지킴이로 뽑힌 바 있다. 지은 책으로 《웃는 한글》, 《누구나 알아야 할 훈민정음, 한글 이야기 28》, 《한글을 지킨 사람들》, 《퀴즈 세종대왕》, 《역사가 숨어 있는 한글가온길 한 바퀴》 등 99권(공저 63권 포함)이 있다.

  • 나무와 함께 세상에 처음 오다

    《세종실록》에, 세계 문자사에 아니 문명사에 경천동지할 사건이 드러났다. 58자로 된 한자로 된 간단한 기록인데 핵심만 줄여 보면, 이달에 임금(세종)께서 친히 훈민정음을 창제했는데 그 글자는 초성자, 중성자, 종성자로 분리돼 있어 합한 후에 글자가 이루어지는데, 글자는 간결하지만 수많은 글자를 생성해낼 수 있어 한자어이든 순우리말이든 맘껏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음자와 모음자를 따로 만든 자모문자, 곧 음소문자를 세종이 직접 발명했다는 것인데 사건의 비중에 비해 기록은 짧고 문자의 실체는 단 한 글자도 드러나지 않은 채 대수롭지 않은 사건인 양 마무리되고 있다. 임금이 직접 발명했지만 한자가 절대적인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한 사건이었음을, 임금이 몰래몰래 연구해 만든 글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임진왜란 때 불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남아 있다면 더 구체적인 기록이 있었을 테지만, 지금 기록으로는 이 기록이 전부다. 《승정원일기》가 남아 있더라도 비밀리에 만든 글자라면 이 기록 이상의 기록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창제 공표 두 달 뒤에 공개되는 최만리 등 7명의 반대 상소에서도 그 점이 잘 드러난다. 반대 상소에 참여한 대부분은 집현전 원로 대신들이다. 이들은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 반포를 의논 없이 서둘러 시행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집현전의 부제학인 최만리조차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몰랐다는 것이다. 모든 기록을 낱낱이 기록하는 실록조차 창제를 마무리해 공표했을 때의 기록, 곧 1443년 12월 30일 자 한 달 기사를 모아놓은 달별 기록이 처음이다.

    결국, 이때 언급한 글자의 실체는 무려 2년이 훌쩍 넘어 1446년 음력 9월 상순 무렵,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처음으로 등장한다. 첫 글자는 놀랍게도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이루어진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글자 ㄱ이었다.

    제일 먼저 나오는 ㄱ(정음1ㄱ)은 아쉽게도 원본 그대로가 아니고 1940년 서예의 대가였던 이용준이 붓으로 복원한 글씨다. 해례본은 목판본이었으므로 ㄱ 글자는 나무에 새긴 활자이다. 보통은 붓으로 써서 나무에 새겨 한자는 붓글씨 꼴(송설체)을 유지하고 있지만 ㄱ은 붓글씨 꼴을 완전히 벗어났다. 마치 컴퓨터 반듯체(고딕체)처럼 반듯반듯하다. 붓글씨는 부드러운 대신에 똑같은 글꼴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새 문자의 표준을 정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르게 쓸 수 있는 개성보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똑같이 쓸 수 있는 표준 꼴이 필요했다. 세종은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각수에게 각별히 주문하고 살펴서 또 원하는 글꼴을 위해 세심한 지도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직선 중심 문자…! 이것은 문자혁명이고 활자 혁명이었다. 문자 기적이었고 활자 기적이었다. 혁명과 기적은 어려움과 복잡함에 있지 않고, 쉽고 간결함에 있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었고, 이러한 글자 덕에 허공에 떠돌던 수많은 말이 자리를 잡았다.

    강아지, 개구리, 기린, 개굴개굴, 그림자, 그리워,
    가나니……

    이렇게 최초로 한글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목판에 새겨 출판했기 때문에 나무와 함께 한글은 이 세상에 처음 온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문으로 설명하다 보니 한문 속에 한글이 쓰인 셈이다. 5,337자로 구성돼 있는데 한자가 4,790자이므로 547자가 한글이다. 자음자, 모음자 등의 낱글자는 기본자 28자에 운용자가 25자 더 있어 모두 53자이다. 음절자는 받침(종성자)이 없는 음절자 81자에 받침이 있는 음절자 95자, 미완성 부분 음절자 4자 포함 모두 180자가 나온다.

    이렇게 새 문자의 자음자/모음자, 초성자/중성자/종성자의 다양한 쓰임새를 보여주며 새 문자의 효용성과 기능성을 요리조리 보여주었다.

    독일 시장조사 전문 기업 스타티스타(Statista) 미국 대학생을 상대로 조사한 자료
    한글의 아름다움, 전 세계인과 나눠야

    세계 곳곳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K-콘텐츠, 한류 바람은 한국 문화뿐 아니라 한국어와 한글의 품격까지 높이고 있다. 전 세계 7,000개 언어 가운데 한국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인구가 7,730만 명, 전 세계 14위 언어를 기록했고(‘에스놀로그’ 국감자료 2020년 2월 발표), 전 세계 약 4,000만 명이 인터넷에서 한글로 정보를 나누며, 언어별 인터넷 사용자 수로는 세계 10위에 해당하는 언어로 성장했다. 한글학교와 세종학당, 한국학교, 한국교육원, 재외 한국문화원 등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은 현재 전 세계 4,000개에 달한다.

    현대언어협회 통계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서 2006~2016년 한국어 수강 신청을 한 대학생 수는 거의 두 배인 1,000명 이상이 늘어 수강생이 가장 많이 증가한 언어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는 한류 한글 꿈을 꿔본다. 그것은 ‘국뽕식’ 민족주의라기보다 한글의 보편적 가치, 보편적 아름다움을 나누는 것이다. 전 주한 미국대사인 스티븐스(Kathleen Stephens)는 2010년 MBC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한글 날아오르다〉에서 한국인들은 한글의 아름다움과 창의성을 전 세계인과 나눠야 하고 그것은 한국 문화의 힘에 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요즘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방송인 사오리는 10월 5일 세종국어문화원이 주최하는 한류 한글 학술대회 때 한글 글로벌 홍보대사로 위촉될 예정인데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제가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으면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누구나 쉽고 평등하게 쓸 수 있는 문자입니다. 한글은 위대합니다. 한글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인에게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겠습니다.”(김병기 기자, 〈어느 일본인의 고백 “위대한 한글, 지금의 나 만들었다”〉, 오마이뉴스 2021년 8월 31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