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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셋. 다시보기

    그날 밤의
    항해

    -트리오웍스가 펼친 〈하몬드오르간의 항해〉

    음악의 매력은 오묘하다. 때로는 연주곡이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놓는다.
    청자들은 잠시 동안 그날 밤의 온도를 즐기며 모험을 떠난다. 7월 29일 오후 7시 명성황후생가
    문예관에서 열린 트리오웍스의 연주가 그랬다. 재즈트리오 ‘트리오웍스’는 달이 걸린 밤하늘 아래에서
    항해하듯 관객을 이끌었다. 잔잔한 바다 위에서 사람들은 1시간여 동안 그날 밤의 항해를 즐겼다.
    현실은 아득했고 그들의 악기는 유난히 더 빛이 났다.

    글 노윤영(편집실)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명성황후생가 문예관에서 공연 중인 트리오웍스
  • 여주세종문화재단은 ‘문화가 있는 날’의 일환으로 재즈 그룹 ‘트리오웍스’의 공연 〈하몬드오르간의 항해〉를 지난 7월 29일(목) 명성황후생가 문예관에서 열었다.

  • 하몬드오르간 연주는 현실을 아득하게 만들고

    하몬드오르간(Hammond Organ)이라 하면 대번 교회나 대성당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연주가 떠오른다. 트로트 메들리에도 빈번히 사용되는 건반악기로 1935년 로렌드 하몬드가 발명한 데서 이름이 붙었다. 1960~1970년대 로큰롤 음악에서도 자주 쓰였는데, 특히 밴드 ‘도어즈’의 연주로 널리 알려졌다. 도어즈의 멤버 레이 만자렉(Ray Manzarek)이 들려주는 하몬드오르간 연주는 훗날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하면서도 오묘한 느낌의 하몬드오르간 연주에는 현실을 아득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지난 7월 29일 여주세종문화재단은 〈하몬드오르간의 항해〉를 통해 공연 이름처럼 하몬드오르간이라는 악기의 매력을 깊게 느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트리오웍스(Trio Works)’는 그동안 다양한 활동으로 재즈계에서 명성을 이어온 오종대(드럼), 성기문(하몬드오르간), 찰리 정(기타)이 2018년 뭉쳐 만든 재즈트리오이다. 깊은 블루스 정서를 품고 있는 찰리 정의 기타, 흑인음악의 소울이 담긴 연주를 들려주는 성기문의 하몬드오르간, 가슴을 때리는 오종대의 드럼 연주가 한데 엮여 화려하고도 깊은 사운드를 들려준다.

    ‘음을 조각하는 마술사’라 불리는 재즈 드러머 오종대는 네오 트래디셔널 재즈트리오, 트리오로그의 멤버로도 활동하며 재즈 팬들의 지지를 꾸준히 받아왔다. 재즈피아니스트이자 하몬드오르간 연주자인 성기문은 10대 때 독학으로 피아노를 익힌 후 ‘이정식밴드’에서 연주했고 이후 ‘웅산밴드’, ‘성기문오르간트리오’, ‘봄여름가을겨울’ 세션 등을 통해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찰리 정 역시 ‘찰리정블루스밴드’, ‘박근쌀롱’은 물론 개인 활동을 통해 국내 최정상급의 재즈 기타 실력을 보여준 연주자이다. ‘드림 팀’이라 불러도 좋을 트리오웍스는 지난 7월 29일 오후 7시 명성황후생가 문예관에서 깊은 내공을 기반으로 리드미컬하면서도 견고한 연주, 절정의 연주 하모니를 생생히 들려줬다.

    코로나19 거리두기로 객석의 50%만 채운 공연장 모습
    트리오웍스, 관객들과 마음을 나누다

    공연은 2019년 발매한 첫 앨범의 1번 트랙 〈군산 가까〉로 문을 열었다. 도입부의 기타 선율에서는 여행을 이제 막 시작한 이의 설렘이 읽혔고, 이후 이어지는 화려한 오르간·드럼 솔로 연주가 돋보였다. 두 번째 곡 〈Wind〉에서는 따뜻하면서도 센티멘털한 연주가 관객의 마음을 훔쳤다.

    곡과 곡 사이, 드러머 오종대는 마이크를 잡고 곡을 설명하거나 이런저런 일화를 들려주며 관객들과 마음을 나누었다. 공연 도중 심벌즈가 고장 난 적이 있다는 일화에 관객들은 미소 지었고 코로나19 이후 상황이 안 좋아졌지만 역시 음악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은 신나는 연주를 하는 밴드라며 예전에는 공연 도중 춤을 춰도 된다는 말을 관객에게 건네기도 했다는데, 이날 공연에서 마음으로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는 관객들이 분명 있었으리라. “우리 음악 괜찮죠? 멋있잖아요.(웃음)” 드러머 오종대의 말에서는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관객들 귀에 익숙한 커버 연주 두 곡이 이어졌다.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의 〈서머 타임〉을 커버한 트리오웍스는 시종일관 잔잔하면서도 섹시한 무드로 공연장 분위기를 이끌었다. 하몬드오르간으로 연주가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곧바로 다음 곡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1980년대 소피 마르소 주연으로 개봉했던 청춘 영화 〈라붐(La Boum)〉의 삽입곡 〈리얼리티〉였다. 영국 출신 가수 리처드 샌더슨(Richard Sanderson)이 부른 이 명곡은 당시 소피 마르소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크게 히트했다. 두 곡 덕분에 학부모를 비롯한 어른 관객들은 잠시나마 추억에 젖은 채 음악에 몰두했다.

    그날 밤 항해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대중가요는 노랫말과 강렬한 멜로디, 비트를 대개 직관적으로 들려준다. 반면 연주곡들은 노랫말이 없기 때문에 조금 더 깊은 감상을 요구한다. 그래서 뭇 사람들은 연주곡을 다소 어렵다고 느낀다. 특히 재즈 연주곡이라고 하면 더 그럴 게다. 하지만 이날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그런 오해를 조금은 풀 수 있었으리라. 모든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하면서 감상하는 것도 좋겠지만,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관객들은 공연장을 관통하는 연주에 몸을 맡기며 그날 밤의 항해를 충분히 즐겼으니까.

    특히 찰리 정이 작곡한 〈사피언스〉와 〈바람의 땅〉은 이런 항해 분위기를 더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찰리 정은 연주할 때 진지하지만 엉뚱한 면도 많다”는 오종대의 말처럼 〈사피언스〉에는 찰리 정의 성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유자재로 흩날리는 꽃잎 같은 기타 연주, 위트와 재치가 느껴지는 곡 구성 덕분에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찰리 정이 티베트 여행 후 만들었다는 〈바람의 땅〉은 말하듯,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한 연주가 돋보인 곡으로 방랑자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성기문이 작곡한 〈문 블루스〉에서는 하몬드오르간의 매력에 흠뻑 빠질 듯한 연주를 선보였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뜨거운 분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트리오웍스는 다시 무대에 올라 앙코르 곡으로 〈A Whiter Shade of Pale〉을 연주했다.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의 원곡이 워낙 잘 알려졌기에 관객들은 끝까지 웃고 박수 치며 그들의 연주를 즐길 수 있었다.

    드러머 오종대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수도사’에 비유했다. “연주자는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아요. 운동선수가 자신의 몸을 단련하듯 매일매일 연습으로 단련해야 해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그 압박감이 대단하니까요. 연주자는 어떤 면에서 수도사 같아요.”

    트리오웍스의 화려하고 깊은 연주에 특별한 비결이 있을 것 같지만 결국 정답은 간단하고도 명확하다. 매일 단련해야 한다는 것. 이런 믿음직한 선장이 있다면 얼마든지 항해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일상에 몸이 매인 우리는 때때로 공연장에서 방랑자가 된다. 눈을 감으면 저기 저곳에 사막이 있고, 끝도 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있다. 공연 제목은 〈하몬드오르간의 항해〉였지만 항해를 이끈 것은 트리오웍스 멤버 전원이었다. 멤버들은 시종일관 눈을 마주치며 연주의 완성도를 높였고, 관객과 소통하며 공연장에 한데 섞여들었다. 그들의 연주에 따라 사람들은 그날 밤을 만끽했다. 특히 몽롱한 분위기를 만드는 하몬드오르간 연주는 이를 더 부추겼다. 한 시간 남짓한 공연 동안 현실은 아득했고, 꿈은 한발 더 가까웠다. 높은 파도 없이 잔잔한 바다 위에서 그날 밤의 항해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