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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둘. 여주 人

    농사로 건강해진 마음
    지역사회 관심으로 환원

    숲마루농원 이하정 농부

    하얗게 만개한 꽃들이 맞아주는 하우스 안은 이미 봄이다. 한겨울에 꽃 무리를 보는 호사라니.
    이것이 바로 여주시 오금동에서 7년째 딸기를 키우는 이하정 씨의 기쁨이다.
    스스로를 작은 농부라 칭하는 이하정 씨는 농사를 시작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추위를 잘 이겨낼수록 단맛이 강해지는 딸기와 함께 이하정 씨가 환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글 박영임(자유기고가)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 여주 딸기는 추운 겨울을 견디면서 단단히 당도를 응축하며
      서서히 익어 단맛과 신맛이 조화를 이룬다.
  •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답니다

    “딸기 농사의 좋은 점요? 딸기 너무 예쁘잖아요. 이렇게 한겨울에 예쁜 꽃도 볼 수 있고요. 딸기의 달콤한 향을 맡으며 예쁜 딸기를 손으로 직접 딸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요즘 원예치료를 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파리 하나씩 올라오는 것이나 꽃대가 나와 꽃이 피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답니다.”

    그래서 늘 딸기에게 예쁘다는 말을 해준다는 이하정 씨. 매년 똑같은데도 어찌 그리 또 새로운지. 첫째 아이 다르고, 둘째 아이 다르듯 하다며 딸기밭을 바라보는 이하정 씨 얼굴에 흐뭇한 ‘엄마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딸기 농사를 짓기 전 서울에서 해운업체에 다닐 때만 해도 지금과는 표정이 달랐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의미 없이 반복되는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낀 이하정 씨에게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일찍이 귀농해 여주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던 남편을 따라 막연히 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여느 열혈 청년 농부들처럼 열심히 귀농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딸기도 그저 때가 맞아 시작한 것이었다.

    “이 지역은 가지 농사를 많이 하는데 당시 가지 모종을 심기에는 늦은 때였죠. 대신 딸기를 시작할 때라는 말을 듣고 딸기 모종을 구입했어요.”

    그렇게 딸기 농사의 시작은 다분히 우발적이었다. 하지만 농사를 시작한 후에는 귀농 학교에 다니고 작목반 활동을 하며 행여 잠깐 한눈팔아 1년 농사를 망칠세라 애지중지 밭을 돌봤다. 어느 날은 시댁에 내려가던 중 딸기로 유명한 경남 산청으로 방향을 틀어 무작정 눈에 보이는 딸기 하우스 농가의 문을 두드린 적도 있다. 운 좋게도 ‘찜한’ 농가에서 지금까지 멘토로 모시는 80대 노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30년간 딸기 농사를 지으신 분들이었는데, 이제껏 농사지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지금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여쭤보곤 합니다. 농사에 대해 배운 것도 많지만, 함께 딸기를 따고 포장하는 모습을 보며 두 분이 함께 농사지으며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 숲마루농원에서 방금 수확한 싱싱한 딸기
    • 재배 기간 내내 곁순과 줄기, 꽃들을 정리해줘야 한다.

    절로 자라는 작물은 없어요

    이제 이하정 씨 부부도 함께 딸기 농사를 짓는다. 쌀농사를 줄이고 딸기에 집중하게 된 것은 다른 작물들에 비해 딸기가 부부 둘이 함께 일을 나눠 키우기에 마침하기 때문이다.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매일같이 곁순을 따주고 꽃 정리를 해야 하는데 섬세함을 요하는 작업이라 이하정 씨의 역할이 제법 크다.

    사람들은 딸기 농사라 하면 수확하는 모습만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절로 자라는 작물이 어디 있겠는가. 9월경 모종을 심으면 11월 전후로 이하정 씨가 ‘탯줄’이라 부르는 런너(자묘)라는 줄기가 나오는데, 그중 튼튼한 런너를 잘라서 한쪽 밭에 심으면 뿌리도 나고 잎도 난다. 뿌리를 내린 런너들은 다시 본밭에 옮겨 심어 키워야 한다. 수확은 11월 말부터 조금씩 시작하는데 재배 기간 내내 곁순을 정리하며 돌봐야 하기에 수확 전에도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다. 수확은 길면 5월까지 이어지며, 4개월간 모종을 키우는 시기와 겹쳐 흔히 딸기 농사를 16개월 농사라 한다. 그러니 1년 내내 손을 놓을 새가 없는 셈이다.

    초보 농부 시절, 재배는 어떻게든 배워가며 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수확 이후였다. 때가 되니 딸기는 빨갛게 익어가는데 수확해도 막상 어디에 팔아야 할지 판로가 막막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인 찬스를 이용했다는 이하정 씨.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도움을 청했죠. 지인들이 직접 구입하거나 아는 분을 소개해주기도 했어요. 새벽부터 딸기를 따 포장하면 오후 3~4시가 됩니다. 그럼 차에 싣고 서울, 분당, 양평, 안산 등 어디든 돌면서 직접 배달했죠.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 11시가 넘기 일쑤였어요.”

    하루는 사람이 많이 찾는 식당 앞에 딸기를 팔기 위해 좌판을 벌인 적도 있다. 어디서 그런 억척스러움이 나왔는지. 우연히 지나다 그 모습을 본 지인이 깜짝 놀라 쫓아왔다. 하지만 출하하고 돌아서기 무섭게 한 움큼씩 달린 딸기를 보고 있노라면 농부 된 도리에서 그날 수확한 딸기는 묵히지 말고 어떻게든 팔아야 했다. 그렇게 집집이 딸기를 배달하던 일도 이제 옛날 일이 됐다. 7년 차에 접어들면서 생협, 학교급식 등 제법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게 된 것. 하지만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 몇 집은 올해도 직접 찾아볼 생각이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저희 숲마루 딸기를 꼭 먹고 싶다는 분들이 있어요. 처음 딸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구입해온 분들인데 신선한 데다 단맛과 신맛이 잘 어우러져 다른 딸기는 못 드시겠다네요.”

    • 숲마루농원에서 수확한 딸기로 만든 수제 딸기 쨈
  • 이제야 저의 본모습을 찾은 것 같다고나 할까요

    사실 여주에는 딸기 농가가 많지 않다. 논산, 산청 등 남부 지역보다 수확이 늦은 데다 여주에서 한창 수확할 시기인 3~5월에는 딸기의 단가가 떨어져 좋은 값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주 딸기는 남부 지역에 비해 추운 겨울을 견디면서 단단히 당도를 응축하며 서서히 익어 단맛과 신맛이 조화를 이룬다. 지난 늦은 봄 딸기가 끝물에 접어들 무렵, 이하정 씨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생협의 소비자에게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내용인즉슨, 올봄 내내 맛있는 딸기를 먹을 수 있어 감사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농부의 1년 고생은 눈 녹듯 녹아내렸다. 이하정 씨가 농부가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농사를 지으며 제 마음이 건강해졌어요.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흙을 만지며 치유된 것 같아요. 농사를 짓기 전엔 지금과 180도 다른 모습이었거든요. 이제야 저의 본모습을 찾은 것 같다고나 할까요.”

    • 농부가 되길 잘했다고 말하는 이하정 씨

    건강해진 이하정 씨는 딸기도 건강하게 키운다. 시작할 때부터 무농약으로 지어 이듬해 친환경 인증을 받았고, 자연스러운 땅의 양분으로 자랄 수 있도록 토경 재배를 고집하고 있다. 그래서 경기도 친환경 급식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고, 생협과도 거래를 트게 된 것이다. 11월에는 여주에 로컬푸드 매장이 생겨 조금씩 납품을 시작했다. 건강한 식문화를 위해 여주에도 친환경 딸기 농가와 로컬푸드 매장이 더욱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는 이하정 씨는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지역사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청소년 자유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한 시민 학부모 모임인 ‘너븐타리’에 참여하고 있어요. 여주 청소년들은 방과 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청소년들의 공간을 만들어줄 생각이에요. 그리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주시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서평대회를 진행하고 있죠. 가끔 반찬 봉사활동에도 나가고 있어요. 농부라고 농사만 짓기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공동체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또한 농사를 짓기 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농사를 지으며 내가 아닌 다른 이들과 지역사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 2020년부터는 농사를 시작할 때 선배 농부들로부터 받은 도움을 다른 새내기 농부들에게도 나눠주고 있다. 딸기 농사를 시작한 이웃의 한 청년 농부의 멘토가 된 이하정 씨는 2021년 첫 수확을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기다리는 중이다. 어느덧 멘티에서 어엿한 멘토가 된 것이다. 모두 농부의 삶이 가져다준 놀라운 변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