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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 둘. 여강길 이야기

    마암에서 나타난
    두 마리의 용

    여강 수신(水神) 설화

    예로부터 사람들은 하늘과 땅, 물에 신이 있다고 믿으며 그들에게 제를 올렸다. 농사가 잘되기를,
    수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만든 풍습이다. 여강에도 수신(水神)에 관한
    여러 설화가 있다. 강을 따라 전해 내려오는 수신 이야기를 만나보자.

    구성 차예지(편집실) 사진 제공 이태한 작품 제공 이철재
    • 신륵사 삼층석탑
  • 가장 오래된 여강 수신,
    말(馬)

    신라 경덕왕 때 황마(黃馬, 누런 말)와 여마(驪馬, 검은 말)에 관한 기록이 있다. 마암 바위 아래에 있는 굴에서 황마와 여마가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는 설화인데, 이 설화 때문에 여주의 지명을 각 말에서 한 글자씩 따온 황려현(黃驪縣)으로 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당시 황마와 여마에 대한 설화는 꽤 영향력이 있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설화 속에도 황마와 여마가 등장한다. 재밌는 것은 경덕왕 때의 기록처럼 말들이 마암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한 노인이 여강에서 낚시하고 있는데, 멀리서 손짓하며 달려오는 여인이 있었다. 노인은 주위에 사공이 없어 대신 배를 타고 여인에게 갔다. 그런데 여인의 뒤로 한 남자가 달려오는 게 아닌가. 노인은 서둘러 여인을 배에 태우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치더니 강가 커다란 바위에서 누런 말과 검은 말이 나타났다. 여인은 누런 말을 타고 달리고, 그 뒤를 따라온 남자는 검은 말을 타며 달려갔다. 황마와 여마가 달려간 자리에는 물보라가 일었다. 이때부터 말이 나타난 강가 바위를 마암이라 부르게 됐다.

    또한 신륵사와 관련된 설화에서는 머리는 용, 몸은 말인 ‘용마’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 1.

    • 고려 고종 때 신륵사 건넛마을에 사나운 용마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승려인 인당대사가 나타나 용마의
      고삐를 잡아챘다. 그러자 길길이 날뛰던 용마가 순해졌다.
      그 후 인당대사의 신력을 뜻하는 ‘신(神)’ 자와 굴레 ‘륵(勒)’ 자를
      써서 신륵사가 됐다.

    • 2.

    • 고려 우왕 때 마암 부근에서 용마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나옹선사가 신기한 굴레를 가지고 용마를
      다스렸다.

    용마 역시 ‘마암 부근에서 나온 신령한 말’로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앞서 살펴봤던 황마와 여마의 변형이 아닐지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사나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용마는 수해를 빗대어 말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강에 사는 신이 노하면 강물이 범람해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사람들은 수신에게 제를 지내 그 마음을 달래려고 한다. 인당대사, 나옹선사와 같은 승려의 도움으로 용마를 제압했다는 것은 수신제가 불교를 통해 이뤄졌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마암 전경 강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이태한 원작자에게 있으며, 원작자와 협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 * 여강 수신 이야기는 《삶이 흐르는 여강 1, 여강길 이야기》 중 3부 중류길 이야기 -여강의 신은 말일까, 용일까? 편에서 발췌·수록했습니다.
    《여강길 이야기》는 여강길 주변의 이야기 자원을 수집·발굴해 여강길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여강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기획했습니다.

    기사에 수록된 작품은
    여주의 젊은 작가인 이철재의 작품입니다.
    이철재 작가는 여주의 강,
    여강이 품은 전설에 관심이 많아
    신비롭고 독특한 전설을
    타투 드로잉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나옹선사와 신륵사,
    그리고 용의 모습을 한 수신

    위의 고려 우왕 때 설화에 따르면 용마를 다스린 인물로 나옹선사가 등장하는데, 이 나옹선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따라가면 용의 모습을 한 수신에 대한 기록들을 찾을 수 있다.

    나옹선사는 고려 말의 승려로, 회암사에 머물다가 왕명을 받고 밀양의 형원사로 가던 중 잠시 들렀던 신륵사에서 입적했다. 나옹선사가 입적할 때 신륵사의 승려인 달여가 말처럼 생긴 여룡(驪龍)이 여강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 여룡은 검은 용을 뜻한다. 말처럼 생긴 검은 용이라고 했으니 여마의 변형이라 볼 수 있다. 여강 수신은 말에서 용 머리를 한 말로, 나아가 용으로 그 모습을 바꿔가며 설화로 전해진다.

    수신에 대한 설화 중 용이 등장하는 것은 또 있다. 조선을 세우는 데 기여한 무학대사와 관련된 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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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대사가 여주 신륵사에 가려는데 태워주는 배가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여주 이포 사공 최 씨가 배를 태워주겠다고 했다. 최 씨의 배는 돛이 없는 낡은 나룻배였다.

    한양에서 여주로 가는 뱃길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라 사공이 애써 노를 저었지만,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신륵사에 가야 하는 무학대사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배가 순풍에 돛 단 듯이 빠르게 나아가는 것이었다. 사공 최 씨가 이상하게 생각해 강을 살펴보니, 여강을 지키는 수호신 청룡과 황룡이 배를 끌어주고 있었다. 무학대사는 쌍룡 덕에 무사히 신륵사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강 수신은 두 마리의 용이다. 불교에는 불국(佛國) 세계를 지키는 8명의 신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용이다. 따라서 불교 관련 설화에 용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나옹선사가 입적한 이후, 여주에서는 불교의 힘이 더 강해졌고 여강 설화 속 수신의 모습도 용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따르는 것이다.

    여주는 비가 많이 내리면 피해를 크게 입었던 마을이기에 수신에 대한 설화가 많다. 신라 경덕왕 때의 황마와 여마, 그 이후 머리가 용으로 변한 용마, 나옹선사가 입적한 이후 나타난 두 마리의 용까지. 여강을 지키는 수신은 그 모양을 바꿔가며 여주의 이야기 속에 항상 존재했다. 수신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연 앞에 겸손하고 간절했던 여주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