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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한글날 국제학술대회
    홈페이지(hangeulyeoju.kr/한글날학술대회.kr)
  • 이야기 셋. 다시 보기

    ‘이주 시대의 언어’
    대회를 바라보며

    한글날 국제학술대회

    2021년 10월 9일 한글날 국제학술대회가 막을 열었다. ‘이주 시대의 언어’라는 주제로
    세계 각지의 언어 연구자들과 한국어 교육자들이 발표자로 나선 이번 학술대회는
    기조연설, 학술 발표, 토크 콘서트 등으로 구성돼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한글의 위상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2021 한글날
    학술대회의 의의를 살펴본다.

    글 신동일(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사진 제공 여주세종문화재단
  • 언어의 단일성과 표준성의 빗장을 풀자

    언젠가 공항 라운지에서 독특한 언어를 들었다. ‘이건 뭐지? 처음 들어보는데….’ 공부한 적이 있었던 독일어 음가는 아니었다. 짧게 체류해 학습할 기회는 없었지만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을 여행하면서 들었던 말도 아니었다. ‘아, 궁금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다가가서 물어봤다. 그리고 알아냈다. 덴마크에서 사용하는 언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어떤 지위를 가진 언어인지 자세히 알아내지 못했다. 세상은 넓고 더 알고 싶은 언어는 넘친다. 공항이 아니라도 관광지, 축제, 쇼핑 단지, 아니 학교와 직장에서도 일상적인 언어 경관이 놀랍게 변하고 있다.

    우리의 자랑인 한국어도 마찬가지이다. 대구에 내려가서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들른 적이 있다. 주문을 받으며 고객과 응대하는 직원 말이 참 재밌다. 억양은 대구 방언인데 통사 구조는 서울 표준어로 들린다. 대화 전략의 특성으로 보면 직원들은 아마도 나름의 표준적인 언어 사용, 말차례 교환에 관해 사전 교육을 받은 것 같다. 커피 마시는 곳에서 영어 단어를 포함한 별별 기호가 넘치고, 대구식 억양, 서울식 문장, 표준화된 대화 구조, 이건 모두 이채롭고도 창조적인 조합이다. 내 귀에는 마법과 같은 언어로 들린다.

    벚꽃 핀 산자락이 아니라도 이와 같은 말과 글의 잔칫상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단일한 언어들의 대립, 박물관에 모셔둔 언어, 결핍의 언어에 대해 연구하는 분도 있다. 나는 모(국)어에 보태진 새로운 언어기호의 자원, 흥겨운 언어들의 축제, 새롭게 학습한 언어만큼 변하고 변할 수 있는 세상에 더 관심을 둔다. 언어는 단순계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접촉, 횡단, 생태, 공간적 속성으로도 상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한국에서 토종 한국인으로 표준 한국어만 사용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유학, 이민, 사업, 여행, 관광을 목적으로 이주의 언어를 사용하고 소비하며 살아간다. 이주민은 ‘그들’이지만 ‘우리’이고, 우리도 얼마든지 그들처럼 살아 갈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대에 국가, 민족, 모국어를 걸고 우리는 그들과 대립하곤 한다. 차이와 다양성, 경험과 직관의 언어 자원으로 그들과 우리가 다시 가까워지면 좋겠다. 언어만이라도 단일성과 표준성의 빗장을 먼저 풀면 좋겠다.

    •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토크 콘서트를 알리는 카드뉴스
    학술성과 대중성을 포용한 가슴 설레는 대회

    여전히 세계화와 이주의 시대적 상상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여주세종문화재단이 기획하고 주도한 ‘이주 시대의 언어’ 주제의 2021년 한글날 국제학술대회 행사에 진심으로 경탄과 찬사를 동시에 전한다. 크지 않은 도시에 위치한 문화재단이 보여준 인문학적 역량에 깜짝 놀랐다. 오래된 혹은 커다란 학술 단체들이 관행으로부터 좀처럼 다루지도 못하는 주제를 과감하게 선택했다. 이론과 현장, 학술성과 대중성, 미시와 거시, 진지함과 경쾌함을 모두 포용한 가슴 설레는 대회였다.

    우선 기조연설로 참여한 카나가라자(Suresh Canagarajah)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교수는 이주 시대의 언어 사용과 문화정체성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루고 있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또 다른 기조연설을 맡은 나 역시 《접촉의 언어학》 혹은 《앵무새 살리기》와 같은 단행본으로 한국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언어 경관에 주목하고 있다. 비대면 대회였지만 내 연구 문헌에서도 자주 인용하는 카나가라자 교수를 여기서 다시 만난 건 큰 기쁨이었다.

    기조연설에서 큰 그림이 그려졌다면 분과 발표는 서로 다른 현장과 각론의 연구 주제가 다뤄졌다. 1분과 ‘이주 시대의 언어현실과 정책’에서 발표한 더글라스 키비(Douglas Kibbee) 일리노이대 교수, 이오리 이사오(Iori Isao) 히토츠바시대 교수, 이학윤 조지아주립대 교수는 미국과 일본에서 이주와 이동의 시대에 언어, 언어적 권리, 초국가적 한인 가정의 언어 실천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한국 밖에서 언어에 관한 권리, 차이와 다양성의 가치가 어떻게 강조되고 있는지 잘 설명해주었다.

    2분과 ‘접촉지대의 언어들’에서는 이호영 서울대 교수, 오영진 인문학협동조합 교육복지위원장, 박수현 상지대 교수, 신견식 작가, 신은혜 한양대 교수가 다양한 현장을 소개해주었다. 찌아짜아족의 한글 도입, 야민정음의 기원, 한국어 시험의 사회적 역할, 유튜브에 나타난 한글 키네틱 타이포그래피, 콩글리시의 가치를 대학교수뿐만 아니라 공연 연출자, 한국어교육 강사, 전문 작가의 시선으로 설명했는데 흥미로운 논점이 많아서 대중의 큰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한글, 한국어, 한국어교육에 관한 세상의 인식을 다루면서 콩글리시와 비교하기도 했다. 접촉, 횡단, 공간의 전환은 교과서, 고부담 시험, 교사 교육부터가 아니라 (대중)문화에서 가장 먼저 시도되고, 발견되고, 수용되기 때문에 흥미로운 시도였다.

    3분과 ‘토크 콘서트, 한 발짝 떨어져 보는 한국: 한글, 그리고 한국의 문화’ 역시 대중의 관심을 크게 끌었을 것이다. 평론가, 수필가, 방송인, 데이터 분석가인 웰시(Barry Welsh), 마샬(Colin Marshall), 샤키야(Sujan Shakiya), 벨라코프(Ilya Belyakov), 아이야뇨(Imatitikua Aiyanyo)는 영국, 미국, 네팔, 러시아, 나이지리아라는 소속 국가의 지리적 차이만큼이나 다른 경험적 시선을 한글과 한국의 문화 평론에 보탠다. 앞서 제도권에서 다뤄지는 언어 정책, 시험의 제도, 표준 언어, 교육과정을 다루었다면 여기서는 유쾌하고도 가볍게 바깥의 시선으로 비추어지는 한국, 한글, 한국 문화를 이질적으로 다루고 있다.

    토크 콘서트 장면
    ‘공존’하고 ‘횡단’하고 ‘접촉’하자

    이처럼 작은 도시에서 기획된 문화재단의 한글날 행사는 오랜 전통의 전문적인 학술 단체가 제공하는 행사 수준보다 더 탁월한 콘텐츠로 구성됐다. 크면서도 세심하게, 총론적이면서도 각론적으로, 한국문화의 안과 밖 시선을 모두 수용하며 국제적인 대회를 성공적으로 성사시켰다. 발표문은 모두 원문으로 제시했고 심지어 그걸 한국어나 영어로 모두 번역해두기도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언어는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이주의 시대에 언어에 관한 우리의 생각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그런 질문에 혜안이 넘치는 논점이 2021년 여주세종문화재단의 한글날 행사 자료집에 모두 수록돼 있다. 다시금 넘쳐날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다중적이면서도 생태적인 언어 환경의 논제를 좀 더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면한다.

    노파심에 이것도 언급하고 싶다. 횡단, 접촉, 서로 다른 언어들의 조합이 다뤄지는 표면적 논의만 보고서 우리의 귀한 모어 자원인 한국어를 영어, 이중언어, 혹은 다중언어로 섣불리 교체하자는 논제로 오해하면 안 된다. 대회 참여자는 더 다양한 언어 담론을 제시하며 한국어는 다른 언어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우리 모두 서로 다른 언어들을 배려하고 존중할 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는 토종 한국인의 표준 한국어에만 우리가 집착할 때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펼쳐질 이주와 세계와의 언어 경관에 우린 꼰대 주장만 하게 될 것이다. ‘소유’하고 ‘정복’하고 ‘대립’하자는 주장에 염려를 보태며, 오히려 생태적으로 ‘공존’하고, 호기심을 갖고 ‘횡단’하고 ‘접촉’하자는 새로운 논점을 여주에서, 여주세종문화재단에서, 그리고 거기 참여한 많은 교수, 전문가 등이 함께 만들었다. 그런 대회에 참가하고 함께 말과 글을 섞은 것만으로 영광이다. 다시 한번 귀한 기회, 멋진 인문적 상상력을 보여준 여주세종문화재단과 관계자 모든 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여주세종문화재단이 여주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평화와 공존의 언어 시대를 주도하는 지성소가 되기를 기대한다.